내가 이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건, 2025년 3월의 어느 여행 때문이다. 마카오와 홍콩으로 떠난, 나의 첫 해외 홀로 여행. 그곳에서 나는 처음으로 온전한 나를 만났고, 돌아와서는 그 모습을 어떻게 일상에서도 이어갈지 오래 고민했다. 그 고민의 끝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이 이야기다.
1.원래 나는 이 여행의 멤버가 아니었다
시작은 언니의 항공 마일리지였다. 언니가 아빠와 함께 마카오·홍콩 여행을 계획하고 비행기표를 샀다. 목적지가 그곳이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아빠가 예전에 다녀온 라스베이거스를 다시 가보고 싶어 하셨는데 — 그곳의 추억이 좋으셨던 모양이다 — 미국을 다시 가긴 쉽지 않으니, 가까운 마카오를 대신 넣고 홍콩까지 묶은 일정이었다.
원래 나는 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남편이 "부녀가 함께 가는 여행은 의미가 있을 것 같다"며 권했고, 그렇게 나는 뒤늦게 합류했다. 표를 따로 끊은 것도 그래서였다. 이왕 가는 거 더 있다 오라며, 먼저 들어가 며칠 뒤에 나오는 일정이 됐다.
그 무렵 언니는 책 쓰는 일로 무척 바빴다. 그래서 동선을 짜고, 맛집을 찾고, 일정을 정리하는 일은 주로 내가 서칭하게 되었다. 그땐 몰랐다. 이게 나중에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드디어 준비가 끝나고, 설레는 마음으로 짐을 싸던 밤.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여행을 못 가게 되었다고. 식사 중에 누군가 머리 위로 뜨거운 국을 옮기다 언니 얼굴에 쏟았고, 이마에 화상을 입은 것이다. 병원에서는 여행이 어렵겠다고 했다. 여행 하루 전날, 여행이 취소되는 상황이었다.
걱정되고 당황스러웠다. 나는 언니를 많이 의지하는 편이었고, 언니가 주도한 여행에서 정작 주선자가 빠진다는 게 부담스러웠다. 아빠와 단둘이라는 것도 어색했다. 아빠를 온전히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사실이 무겁게 다가왔다.
아빠와의 관계는 편하지만은 않았다. 부녀지간이지만 아빠는 무뚝뚝하셨고, 그런 아빠를 닮아 나도 그랬다. 어색한 사이랄까. 게다가 아빠는 청력이 좋지 않으신데 나는 목소리가 작은 편이라, 대화에도 불편함이 있었다.
이런 걱정을 안고, 나의 첫 홀로 여행이 시작되었다.
2.혼자, 낯선 도시에 내리다

가족들의 배웅을 받으며 인천을 떠났다. 남편과 아들, 딸을 두고 혼자 떠나는 여행은 처음이라 어색했고, 어딘가 미안한 마음이 따라붙었다.
마카오에 도착하자마자 실감했다. 이제 기댈 사람이 없다는 걸.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해외에서 영어로 소통하는 일은 늘 남편의 몫이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안 되는 영어로 직접 길을 물어야 했다. 숙소까지 가는 길은 무료 셔틀을 두 번 갈아타야 하는 복잡한 경로였고, 나는 더듬거리며 겨우겨우 그 길을 뚫었다.
셔틀에서 내려 구글 지도를 켰다. 그런데 지도가 자꾸 어긋났다. 분명 이쪽이라는데 아무리 걸어도 나오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좁은 골목을, 사람들을 헤치며, 맞지 않는 지도를 들고 헤맸다. 결국 지나가던 현지 경찰처럼 보이는 분께 물었더니 — 숙소는 바로 옆에 있었다. 지도는 한 블록을 더 가라고 했는데.
그렇게, 온전히 내 힘으로 첫 체크인을 마쳤다.
3.답사 — 서브에서 메인으로
호텔에 도착하니 피곤했지만, 짐만 내려놓고 바로 다시 나갔다. 아빠가 오면 안내를 해야 했으니까. 그 전에 한 번은 직접 걸어봐야 했다.
아빠는 허리 디스크로 허리와 다리 통증이 있어 오래 걷지 못하신다. 그래서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편한 동선을 찾는 일이 중요했다. 식당과 주요 관광지의 위치도 미리 파악해둬야 했다. 나는 구글 지도를 들고, 아빠와 걷게 될 길을 하나하나 먼저 답사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답사를 다니는 내내, 나는 묘한 흥분과 희열을 느꼈다. 지도를 보고 길을 제대로 찾아냈을 때의 작은 쾌감. 좁은 골목을 구석구석 발로 밟으며 눈으로, 오감으로 빨아들이는 낯선 자극들. 도시의 온갖 것들이 잠들어 있던 세포를 하나씩 깨우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순간 알게 되었다. 나는 은근히 길을 잘 찾고,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사람이라는 걸.

그렇게 도시를 익혀둔 뒤, 밤늦게 도착한 아빠를 공항으로 마중 나갔다. 가기 전엔 걱정이 앞섰다. 단둘이 어색하면 어쩌지. 그런데 막상 낯선 도시에서 아빠를 만나는 순간, 걱정은 사라지고 대신 설렘이 밀려왔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이 도시에 대해, 내일의 일정에 대해 가이드처럼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어느새 어색함은 반가움으로, 그리고 여행 파트너 사이의 친밀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늘 딸로서 받기만 하던 관계에서, 처음으로 내가 아빠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 보람이, 심야버스의 창밖 불빛과 함께 조용히 번졌다.
그렇게 첫날이 저물었다.
4.마카오 — 화려함을 입다
다음 날 아침, 본격적으로 관광에 나섰다. 전날 미리 돌아둔 덕분에 마음이 편했다. 답사가 준 자신감으로, 나는 아빠를 데리고 자신 있게 거리를 누볐다.

마카오는 마음에 쏙 들었다. 오랜 식민의 역사가 빚은 풍경과, 카지노의 빛과 그림자가 뒤섞인 도시. 그 명암마저 나에겐 온통 좋은 자극이었다. 다행히 아빠도 이 도시를 충분히 즐기셨고, 그것만으로 마음이 놓였다.
이어 코타이의 리조트로 옮겨 짧은 호캉스도 누렸다. 번쩍이는 불빛 속에서 잠시 현실을 잊고 그 화려함을 옷처럼 걸쳐본 시간. 그렇게 우리의 2박 3일도 반짝이며 저물었다. 함께 오지 못한 가족들과 언젠가 다시 오리라 다짐하며, 이제 홍콩으로 향했다.

5.홍콩 — 사랑에 빠지다
마카오에서 홍콩으로는 버스로 넘어갔다. 두 도시가 긴 다리로 이어져 있어 육로로 갈 수 있었다. 그 길고 신기한 다리를 건너는 동안, 새로운 여행지로 옮겨가는 설렘이 차올랐다. 홍콩의 공기는 확실히 달랐다. 이제 진짜 새로운 시작이었다.

한 가지 걱정은 있었다. 마카오는 미리 답사할 시간이 있었지만, 홍콩은 나도 처음이라 아빠와 함께 부딪쳐 나가야 했다. 그래도 이미 자신감이 붙은 나에겐 큰 문제가 아니었다. 해보자.
방법은 이랬다. 목적지를 찾기 전에 아빠는 잠시 기다리시게 하고, 내가 먼저 길을 찾은 뒤 다시 돌아와 아빠를 모셔왔다. 다리가 불편한 아빠가 괜히 헤매다 고생하실까 봐, 내가 두 번 오가며 아빠의 체력을 대신했다. 그러다 또 하나를 깨달았다. 나는 생각보다 잘 걷고, 체력이 좋은 사람이라는 걸. 참, 자꾸만 새로운 나를 발견하게 되는 여행이었다.

홍콩은 마카오와는 또 다른 매력이었다. 빼곡한 빌딩 숲, 현재와 과거가 공존하는 거리. 낡았지만 지저분하지 않고, 힙했다. 세련됨과 빈티지가 완벽하게 어우러지는 곳. 자유로웠다. 그저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 나는 자유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아주 빠르게 이 도시와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6.아빠와의 홍콩 — 마침표를 찍다
아빠와 나는 두 발로 이 도시를 누볐다. 좁은 골목에서 사람들을 피해 걸었고, 오래된 노포 한 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곳에 쌓인 세월을 맛보았다. 야경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언젠가 아빠와 이 세상에서 헤어지는 마지막 날, 나는 이 밤을 떠올리겠구나. "아빠, 그때 우리 홍콩에서 야경 보며 앉아 얘기했던 거 기억나? 나 그때 참 좋았어. 고마워, 나의 아빠여서." 그렇게 말하게 되겠구나.

오랜 세월 아빠와의 관계에서 풀리지 않던 감정들이, 그 밤 조용히 매듭을 짓고 마침표를 찍었다.

그중에서도 잊히지 않는 장면이 하나 있다. 빅토리아 피크에서 야경을 보고 내려오던 길, 마침 지나가는 트램을 보고 즉흥적으로 아빠와 함께 올랐다. 2층 맨 앞자리가 비어 있어 거기 앉았는데, 구불구불 아슬아슬하게 빌딩 숲을 통과하는 그 길이 마치 놀이기구 같았다. 오래된 것을 타고 현재를 누비는 느낌. 과거와 현재가 한 몸으로 흐르는 감각. 훗날 아빠에게 홍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게 뭐냐 물었을 때, 아빠도 이 트램을 첫 번째로 꼽으셨다.

그렇게 아빠와의 홍콩은 저물었다. 이제 아빠가 먼저 한국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7.혼자 남은 홍콩 — 살아있음
아빠를 배웅하고,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이제 오롯이 혼자서 홍콩을 누리고 돌아가면 된다.
내가 택한 방법은 걷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봤던 거리, 여행 프로그램에 나왔던 익숙한 골목들을 걷고 또 걸었다. 걸으면서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그 순간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나의 시선을.


원래 나는 혼자 식당에서 밥도 잘 못 먹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혼자 밥을 먹고, 혼자 디저트를 먹고, 혼자라는 두려움을 하나씩 깨며 많은 것을 처음으로 해봤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으론,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 이곳에 올 날을 그렸다.
여행 마지막 전날.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혼자 맞는 첫 생일. 그날 내가 간 곳은 홍콩 디즈니랜드였다. 혼자서는 절대 가지 않을 법한 곳에, 그것도 생일에 간 것이다. 이유는 역시 답사였다. 언젠가 아들과 딸을 데리고 오려면, 내가 먼저 가서 겪어봐야지.

늘 아이들 손을 잡고 오던 놀이동산에 혼자 오니 조금 어색했지만, 나쁘지 않았다. 아직 어린 딸과는 탈 수 없던 놀이기구도 타고, 누군가를 챙겨야 하는 수고 없이 온전히 나만을 위해 보낸 하루. 그것만으로 훌륭한 생일 선물이었다. 마지막 공연까지 다 보고, 늦은 밤에야 숙소로 돌아왔다.
그런데 마음 한켠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아빠의 못다 이룬 마음이었다.
아빠는 귀국 전, 평소 고마워하던 분께 선물을 하고 싶어 하셨다. 여행 내내 눈여겨보던 중국 전통 다기 세트가 있었지만, 가격도 그렇고 이게 맞나 망설이다 결국 사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그게 내내 마음에 걸렸다.
늦은 밤, 나는 그 다기 세트를 사려고 숙소 근처 매장을 찾아봤다. 원래 봤던 매장은 너무 멀어 다음 날 출국 전엔 갈 수 없었으니까. 다행히 숙소 가까운 곳에 매장이 있었다. 그런데 오픈 시간과 공항으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을 계산해보니, 정말 빠듯했다. 급하게 사서 곧장 나서야 하는 상황. 그냥 포기할까 싶다가도, 망설이던 아빠의 그 눈빛이 아른거려 — 해보자, 하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다행히 그 매장에도 물건이 있었고, 나는 늦지 않게 공항에 닿을 수 있었다.
한국에 돌아가 그걸 아빠께 건넸을 때, 만족해하시던 그 얼굴. 그걸 보는 나도 마음이 더없이 흐뭇했다.
8.서울 — 매일 여행하는 사람
나는 서울에 있다. 내가 뿌리내려 살고 있는 서울.
여행은 끝이 있고, 일상은 이어진다. 나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처음 며칠은 여행의 도파민이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의 기분 좋은 텐션이 아직 유지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에도 유효기간이 있어, 금세 사라져 버렸다.
반복되는 일상의 루틴은 안전감을 주었지만, 마음 한켠에선 우울이 피어올랐다. 여행할 땐 그렇게 생기 넘치던 내가, 왜 일상에선 이토록 처져 있을까. 그 극명한 대비에 의문이 들었다. 단순히 여행을 가고 안 가고의 문제일까. 더 근본적인 무언가가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삶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일상도 여행처럼 행복하고, 늘 설렐 순 없을까. 매일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하루하루 조금씩 나아지는 나를 만날 순 없을까. 삶을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 달라지면 어떨까. 뿌리내린 곳에서 누리는 안전감과, 여행자의 설렘. 이 둘이 공존하는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러면서 내가 나고 자란 서울이, 문득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 누군가는 이 서울을 여행으로 오겠구나. 누군가의 가고 싶은 여행지 리스트에 올라 있겠구나. 오고 싶어도 오지 못하는 곳일 텐데, 나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구나.
그럼, 서울을 나의 여행지라고 여기며 살아보자.
나는 매일 여행한다. 일상을 여행자처럼 산다. 바로 이곳, 서울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