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서울을 여행지처럼 여기며 살기로 했다. 그 뒤로 이 도시에서 걷는 길이 달라졌다. 안 보이던 것이 보였고 지나치던 자리에 멈춰 서게 됐다. 그런데 이번 여름 바닷가 돗자리에 앉아서 알았다. 내가 목록에 넣은 적 없는 곳이 하나 있었다.
1.진상
전라남도 광양시 진상면 지랑마을.
우리 가족은 이곳을 마을 이름으로 부른 적이 없다. 그냥 진상이라고 했다. 진상에 간다. 진상에 있다. 진상에서 온다.

엄마가 나고 자란 곳이다. 나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살던 집.
여름이 되면 우리는 그 집에 모였다. 방학이 있었고 8월에는 할아버지 생신이 있었다. 두 가지가 같은 계절에 있었으니 우리집 여름휴가는 늘 진상이었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학창시절까지 매년 그랬다.
그리고 이 집에는 내 기억보다 앞선 시간이 있다. 더 어릴 적에 나는 한동안 여기서 살았다고 한다. 내 기억에는 없다. 없는 걸 보면 아주 어릴 때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은 내가 가장 먼저 간 곳이고 가장 여러 번 간 곳이다.
2.그 집
할아버지는 나를 유독 예뻐하셨다고 한다. 내가 직접 가진 것은 표정 하나다. 인자하다는 말을 나는 그 얼굴로 배웠다.
그리고 사탕. 할아버지는 맛있는 사탕이나 간식을 어딘가에 숨겨두셨다가 몰래 쥐여주시곤 했다. 무엇을 받았는지는 이제 기억나지 않는다. 남은 것은 맛이 아니라 손이다.
할머니는 음식이었다. 그 집에서 나는 콩국을 두 가지로 먹었다. 하나는 따뜻한 것. 손으로 썬 면을 콩국에 넣고 함께 끓여 마지막에 설탕으로 맛을 냈다. 다른 하나는 우뭇가사리를 넣어 차게 먹는 것. 그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손맛이었다.
할아버지가 먼저 가셨다. 내가 10대 시절이었다. 할머니는 그로부터 몇 년 뒤 내가 스무 살 넘었을 무렵 가셨다.
이제 누릴 수 없는 것들이다. 아련한 기억으로만 남은 따뜻한 온기들. 그립다.
그 뒤로 진상에 가는 일이 뜸해졌다. 갈 이유가 줄었으니까.
그런데 그 집은 비지 않았다. 엄마의 형제들이 계속 그 집을 가꿨다. 낡은 데를 손보고 쓰기 편하게 고쳐두기도 했다. 내 발길이 뜸해진 동안에도 누군가는 계속 그 마당을 밟고 있었다.

그리고 은퇴한 아빠가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다. 아빠는 서울 사람이다. 평생 서울에서 사실 줄 알았는데 낯선 곳에서 새로 시작하셨다. 감사하게도 형제들은 그런 아빠에게 제일 좋은 독채 방을 내어주셨다.

그래서 나는 다시 진상에 자주 가게 되었다.
3.황금알마트
이번 여름에도 우리는 진상에 갔다. 아이들 방학이었다.
언니네도 왔다. 조카가 셋이니 마당에 아이가 다섯이었다.
나는 8살 터울 남매를 키운다. 그래서 외동 둘을 키운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런데 이 마당에서만은 그 말이 틀린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논다. 뒷산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받아 첨벙거리고 텃밭에 들어가 흙을 만진다. 개구리를 본다. 서울에서는 볼 일이 없는 것이다.

내가 어릴 적 이 마당에서 놀던 방식과 비슷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건 따로 있다.
집에서 걸어서 십 분. 황금알마트라는 가게가 있다. 아이들은 거기까지 걸어가서 각자 좋아하는 간식을 하나씩 고른다. 그리고 그걸 먹으면서 걸어 돌아온다. 그 길을 좋아한다.
아이들에게 이곳은 여행지다. 물놀이가 있고 처음 보는 것들이 있고 하루에 한 번 가게에 간다. 서울에서는 이런 여름이 없다.
내가 어릴 적에도 비슷한 자리에 가게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우르르 몰려가 불량식품을 사 먹었다.
같은 가게는 아니다. 같은 아이도 아니다. 그런데 걸어서 십 분이라는 거리는 그대로고 돌아오는 길에 먹는다는 것도 그대로다.
4.돗자리
하루는 차로 한 시간 거리의 바다에 갔다.
아이들은 전부 물에 들어가 있었다. 나는 짐을 지키며 돗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이상했다. 어릴 적 이 여름에서 나는 물에 들어가 있는 쪽이었다. 어른들이 돗자리에 앉아 있었고 나는 그 어른들이 거기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해한 적이 없다. 이제 내가 그 자리에 앉아 있다.
같은 여름인데 자리가 바뀌었다.
돗자리에 앉아 나는 내가 다녀온 곳들을 떠올렸다. 처음 혼자 내렸던 낯선 도시. 두 번씩 갔던 곳들. 언젠가 다시 가려고 담아둔 곳들.
그중에 진상은 없었다.
평생 매년 갔는데도 그랬다. 외갓집이니까. 가족을 만나러 가는 일이니까. 나는 그 일에 여행이라는 말을 붙일 생각을 하지 않았다.
몰랐던 게 아니다. 이어보지 않은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처음부터 여행이었다. 나에게는 오래 아니었다.
서울로 돌아왔다. 이 도시를 여행지처럼 여기며 살기로 한 것은 결심이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전부터 이미 여행이었던 곳이 하나 있었다.
그래서 한 곳을 더 적었다.
내가 가장 오래 다닌 곳. 여행이라고 부르지 않았던 곳. 진상.
여름이 오면 또 진상에 갈 것이다. 그리고 내일은 서울을 걸을 것이다.
둘 다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