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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영어를 배우는 두 시간, 나는 백 년을 걸었다

Live where you are, like a Seouler.

이 글은 기다리다가 시작됐다. 아이를 학원에 들여보내고 남은 두 시간. 그 시간에 나는 그 주변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내가 서 있던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를.

1.세 시의 버스

2주 동안 우리는 매일 세 시에 유치원을 나온다. 영국문화원 네 시 이십 분 수업에 맞추려면 그래야 한다.

한낮의 열기가 가득 고여 있는 시간. 아이 손을 잡고 정류장에 선다. 시청 쪽으로 가는 버스에 오르면 아이는 창밖을 보고 나는 자꾸 시계를 본다. 늦으면 안 되니까.

솔직히 말하면 번거로운 일이다. 아이를 일찍 데리고 나와 도심까지 들어와서 두 시간을 밖에서 보내고 다시 그 길을 되짚어 돌아오는 일. 그것도 무더위가 한창인 이 여름날에.

그래도 나는 좋은 점을 세어봤다. 아이에겐 영어를 배우는 두 시간. 나에겐 온전히 비어 있는 두 시간. 그리고 수업이 끝난 뒤 우리 둘에게 남는 시간.

이 2주는 원래 영어를 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덤이 하나 더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곧장 집으로 가지 않는 것. 이왕 나온 김에 아이와 저녁을 먹고 이 동네를 조금씩 둘러보다 돌아가는 것. 짐이라고 생각했던 시간을 나는 슬쩍 덤으로 옮겨 적었다. 내가 사는 도시를 낯선 눈으로 들여다보는 일. 나는 그렇게 살기로 했으니까.

여섯 시 이십 분까지. 유리문이 닫히고 아이의 뒷모습이 사라지면 나는 그 두 시간을 손에 든 채 거리에 남겨진다.

영국문화원 복도를 걸어 들어가는 아이

그리고 걸었다. 나는 이 길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전에도 다른 이유로 여러 번 걸어본 거리였으니까. 새로울 게 없다고 여겼다. 궁 담장을 한 바퀴 돌고 어디 앉아 커피나 한 잔 하면 두 시간쯤은 가겠거니 했다.

2.백사십 년 전의 영어

아이가 영어를 배우러 들어간 건물이 어느 자리 위에 세워진 것인지 나는 가보고서야 알았다. 배재학당 터였다.

파란 유리 건물과 나란히 선 붉은 벽돌 동관

바로 옆에 붉은 벽돌집 한 채가 서 있다. 백 년 전 배재학당의 교실이었고 지금은 역사박물관이다. 그 앞에 한 사람의 동상이 있다. 아펜젤러.

아펜젤러 동상

모르는 이름은 아니었다. 학교에서 배웠고 시험에도 나왔다. 아펜젤러 — 배재학당 — 근대 교육. 그렇게 세 칸으로 묶어 외웠다가 오래전에 흐려진 이름.

나는 그 앞에 서서 안내판을 읽었다. 교과서 속에 납작하게 눌려 있던 이름이 그제야 두께를 얻었다.

1885년 8월. 미국에서 온 스물일곱의 젊은 선교사가 조선 청년 둘을 앉혀놓고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듬해 고종은 그 학당에 이름을 내렸다. 배재(培材) — 인재를 기른다는 뜻. 우리나라 근대 교육이 여기서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백사십 년 전에도 이 언덕에서 누군가는 영어를 배우고 있었다. 내 딸이 지금 배우고 있는 그 언어를. 아마 나보다 훨씬 절박하게.

나는 아이를 데리고 아주 현대적인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나는 아주 오래된 줄에 서 있었던 것이다.

3.나의 선배

아펜젤러 안내판

안내판에는 그의 마지막도 적혀 있었다.

1902년 6월. 성서 번역 회의에 가려고 제물포에서 목포로 향하던 밤배가 짙은 안개 속에서 다른 배와 부딪쳤다. 배는 2분 만에 가라앉았고 그는 빠져나왔다. 그런데 함께 타고 있던 조선인 청년과 여학생을 데리러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다.

돌아오지 못했다. 마흔넷이었다.

여기까지만으로도 충분히 먹먹한 이야기다. 그런데 나를 멈춰 세운 건 그 한 줄 안에 박혀 있던 단어 하나였다.

그 여학생은 정신여학교 학생이었다.
정신여자중학교. 정신여자고등학교. 내가 나온 학교다.

백이십 년 전에 죽은 미국인과 나 사이에 아무 접점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내 학교 선배를 구하려고 가라앉는 배로 돌아갔다. 이름도 모르는 그 여학생은 나보다 백 년쯤 앞서 같은 교문을 드나든 사람이었다.

역사가 갑자기 남의 일이 아니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나에겐 그게 안내판 앞이었다.

낯선 나라였을 것이다. 그는 스물일곱에 건너와 마흔넷에 이 나라 앞바다에서 죽었다.

그에게 배우겠다고 모여든 청년들도 다르지 않았다. 그때 이 언덕에서 영어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언어였다.

그 앞에서 나는 조금 작아졌다.

내 아이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는 그런 게 아니니까. 넓은 세상을 보고 어디서든 자기 몫을 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 지극히 사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이유다.

그곳을 빠져나와 걷는 내내 그 생각이 나를 따라왔다.

4.걸어서 오 분

걸어서 오 분이라고 했다.

안내판 앞에서 생긴 관심이 쉽게 가라앉지 않아 나는 이 동네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명전이라는 이름을 처음 보았다. 을사늑약이 맺어진 곳이었다.

몰랐다. 정동길은 몇 번이나 걸었는데 그런 건물이 있는 줄도 몰랐다. 큰길에서는 보이지 않고 정동극장 옆 좁은 길로 들어가야 나온다니 우연히는 만날 수 없는 자리였다.

거리가 달라진 게 아니라 내 관심이 달라진 것이었다.

아펜젤러가 세운 정동제일교회를 지나 나는 그 골목으로 걸어 들어갔다.

골목이 끝나는 자리에 붉은 벽돌집이 서 있었다. 그 앞에 서는 순간 시간이 백 년쯤 뒤로 물러난 것 같았다.

중명전 정면

아름다웠다. 오래 견딘 것들에게만 생기는 아름다움이 있다. 나는 한참을 올려다보다 안으로 들어갔다.

이 집은 고종의 서재였다. 책과 보물을 두고 외국 사절을 맞던 방이었다. 1905년 11월 17일 밤 이 건물은 일본군에게 둘러싸였고 그 안에서 을사늑약이 맺어졌다. 대한제국은 외교권을 잃었다.

외교권. 세계와 직접 말을 섞을 권리.

그 아름다움 안에서 나라가 말을 잃었다.

을사늑약 체결 장면 재현

그 장면을 재현한 곳에서 나는 분노했다. 누군가는 도우러 왔고 다른 누군가는 뺏으러 왔다.

세계가 밀려들어 오던 그때 우리가 조금만 더 단단한 나라였다면 어땠을까.

배우려는 마음은 그때도 여기 있었다. 다만 그 마음을 지켜줄 힘이 없었을 뿐이다.

5.여섯 시 이십 분

여섯 시 이십 분. 유리문이 열리고 아이가 나온다.

오늘은 어땠어. 재미있었어?

예스. 아이는 환한 얼굴로 그렇게 대답하고 엄지를 척 들어 보인다. 재미있었어. 또 오고 싶어. 수업이 끝나는 게 아쉬운 모양이다.

이곳을 좋아하니 다행이다. 세 시에 유치원을 나서던 그 번거로움이 이 얼굴 하나로 갚아진다.

아이 손을 잡는다. 내가 방금 어디에 다녀왔는지는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곧장 버스를 타지 않는다. 저녁을 먹어야 하니까.

옛 교사 앞마당을 걸어가는 아이

정동길에는 오래된 가게가 많다. 혼자 걷던 낮에 몇 번이나 눈여겨봤다. 나보다 훨씬 오래 이 자리를 지킨 집들. 언젠가 저기 앉아 한 그릇 먹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이와 둘이서는 들어가기가 어렵다. 매운 것이 많아 아이가 먹을 수 없고 둘이 들어가 하나만 시키기도 마땅치 않다. 무엇보다 입맛이 까다로운 아이가 한 숟가락 뜨고 안 먹겠다고 하면 그때부터 난감해진다.

그래서 우리가 먹는 건 김밥이나 토스트나 국수다. 어디서든 먹을 수 있는 것들. 아쉬움은 접어두고 아이가 먹을 수 있는 쪽을 고른다.

백 년쯤 된 거리에서 우리는 김밥을 먹었다.

이 거리의 오래된 것들은 박물관 안에 들어가 있지 않다. 그냥 서 있고 그냥 영업 중이다. 사람들이 그 앞을 지나가고 문을 열고 들어가고 한 그릇을 비우고 나온다. 그리고 그 사이에 우리가 있었다.

대단할 것 없는 저녁이었다.

6.같은 거리

저녁을 먹고 우리는 조금 더 걸었다. 궁 담장을 따라 걷다가 시청 앞 광장을 지났다.

덕수궁 돌담길에 선 아이
서울광장을 걸어가는 아이. 뒤로 옛 시청과 새 시청

광장에는 외국인이 많다. 캐리어를 끌고 지도를 확인하고 궁 앞에서 사진을 찍는다.

우리 동네에도 외국인이 많다. 오래전부터 공부하러 온 학생들이 살았고 요즘은 여행 온 사람들도 종종 보인다. 서울은 어느새 세계가 오는 도시가 되었다.

백이십 년 전에도 이 거리에는 외국인이 많았다. 다만 그들이 여기 온 이유는 지금과 달랐다.

버스에 오르면 아이는 금세 잠이 든다. 나는 그 얼굴을 본다. 조금 전 유리문을 열고 나오며 엄지를 척 들던 얼굴을.

며칠 동안 나를 따라오던 생각의 답이 그 얼굴에 있었다. 내 아이가 영어를 배우는 이유가 사소해서 부끄러운 게 아니었다. 사소해질 수 있게 된 것. 그게 그들이 원했던 결과였다.

백이십 년 전 이 거리에서 누군가가 끝내 지키지 못한 권리를 내 아이는 그냥 가지고 태어났다. 그리고 그 말을 웃으면서 쓴다. 예스.

누군가는 이 거리를 보려고 비행기를 타고 온다. 나는 아이 학원 때문에 왔다. 같은 거리다.

비행기를 타야만 백 년을 걸을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나는 매일 여행한다. 일상을 여행자처럼 산다. 바로 이곳 서울에서.

Live where you are. Count where you've been. Like a Seouler.

있는 곳을 산다. 지나온 곳을 여행이라 부른다. 서울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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